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문단 편집) == 개요 == || [[그리스어]] || Γενοκτονία των Αρμενίων [br] (Genoktonía ton Armeníon) || || [[불가리아어]] || Арменски геноцид [br] (Armenski genotsid) || || [[아람어]] || ܩܛܠܥܡܐ ܐܪܡܢܝܐ [br] (qṭālʿammā ārimnaya) || || [[아랍어]] || مذابح الأرمن [br] (maḏābiḥ al-ʾarman) || || [[아르메니아어]] || Հայոց ցեղասպանություն [br] (Hayocʿ cʿeġaspanutʿyun, 하요츠 체가스파누튠)[* '아르메니아인 멸문(滅門)'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튀르키예어로는 Ermeni Soykırımı으로 옮긴다.] [br] Մեծ Եղեռն [br] (Mec Ełeṙn, 메츠 예게른)[* 아르메니아어로 '대재앙'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이탈리아인]] 만화가 파올로 코시가 그린 《메즈 예게른(''Medz Yeghern: il grande male'')》(2007)이라는 작품 역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주제로 했다. 그 밖에도 '학살들'을 의미하는 'ջարդեր(ǰarder, 자르데르)'나 'կոտորածներ(kotoracner, 코토라츠네르)'라는 표현도 사용된다.] || || [[영어]] || Armenian Genocide || || [[쿠르드어]] || Nîjadkujiya Ermeniyan || || [[튀르키예어]] || Ermeni Meselesi[* 영어의 Armenian Genocide의 표현을 직역해 Ermeni Soykırımı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튀르키예어로 soykırım은 하나의 일족이나 가문을 말살하는 행위를 의미하므로 학살보다는 '멸문'에 더 가까운 의미다. '학살'을 의미하는 표현은 [[아랍어]]에서 유래한 katliam이며 [[아시리아인 대학살]]에 대해서는 Süryani Katliamı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튀르키예에서 공식적인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관련 문건 표기는 '아르메니아인 문제'라는 뜻의 Ermeni Meselesi이며, 이를 완곡·소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1915 olayı([[1915년]] 사건) 같은 말을 쓴다. 그 외에도 '아르메니아인 강제추방'을 의미하는 Ermeni Tehciri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 || [[한국어]] ||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오스만 제국]]에서 [[아르메니아인]]을 대상으로 자행된 일련의 집단학살 사건을 말한다. 근대적 의미로서 최초의 '[[제노사이드]]'이자[* [[제노사이드]]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애초에 '제노사이드'란 단어부터가 이 사건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다음으로 가장 많이 연구된 학살이지만 지금까지도 정치적인 이유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사건이기도 하다. 희생자 수는 주장하는 측마다 다르나 대략 48만에서 12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튀르키예 역사 위원회장 유수프 할라치오을루(Yusuf Halaçoğlu)의 2008년 공식 통계는 413,067명이며 영국의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100-120만, 미국정부의 통계로는 약 48만 6000명, 가톨릭 대백과사전은 약 60만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렇듯 학살의 정확한 규모는 조사 주체에 따라 다르게 보고 있고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로는 테슈킬랴트 마흐수사(Teşkilât-ı Mahsusa)의 문서고가 1차 대전 및 독립전쟁 전후로 소실되어 당시 오스만 제국의 구체적인 행정내용들이 문서상으로 보존되지 않음을 들 수 있다. 더욱이 당시 오스만 제국의 지방행정력은 부실하여 학살 사건 이전부터 이미 인구통계 등이 정확히 파악되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 오스만 제국 중앙정부는 전쟁 직전까지 지방 인구과 징병 가능한 청년인구의 파악조차도 프랑스와 영국 통계기관의 도움을 받던 게 현실이었다. 두번째 문제로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의 범위와 성격 그리고 기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가령 학살로 인해 발생한 피난민이 피난길이나 수용소 등지에서 질병이나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하게 된 것을 아르메니아 학살의 범주 내로 보느냐 아니냐 등의 관점 차이로 학살의 규모가 더 커지거나 줄어들 수 있다. 후술하듯 [[아르메니아인]]들만 살해당한 것은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 내의 여러 민족들이 서로 독립하려고 했기 때문에 오스만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민족주의적으로 종교를 떠나 튀르크 민족주의에 반항하는 민족에게는 자비란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아시리아인]] 및 [[아랍계 기독교인]], [[무슬림]]이라고 해도 [[아랍인]]도 [[아르메니아인]] 희생자보다는 수가 적을지언정 수십만 명 정도가 학살당했다. 그래서 아랍인들도 현재까지 튀르키예에 대한 감정이 영 좋지 않다. 이 학살 이후 [[흑해 그리스인]]들도 마찬가지로 수십만 명이 학살당했다. [[홀로코스트]] 과정에서도 [[유대인]] 외에 많은 [[슬라브]]인, [[집시]], 장애인, 반정부 인사들이 학살당했으나 세간에는 유대인만 피해자로 알려져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휘말려 무분별하게 피해를 입은 아랍권 나라들에서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이나 대학살이라는 표현에 대해 아르메니아인들만 피해자는 아니거늘 마치 아르메니아인만 죽었다는 듯이 영어로 쓰고 왜 이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면서 언짢게 여긴다. [[영어 위키백과]]만 해도 아랍인·쿠르드인들에 대한 학살[* 아시리아인이나 그리스인 학살이라 별도로 상세히 분석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을 설명함에 있어서 고작 초루흐 강 계곡 학살(Massacres in the Çoruh River valley)이라고 표현하며 이조차 자세히 소개된 것도 아니라 이 글 제목으로만 두루뭉실하게 대충 언급하는 수준이다. 이 명칭을 아랍 측에서 무척 안 좋게 여기는데 이는 일개 한 지역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강제로 이동하던 아랍계 무슬림들을 초루흐 강 계곡에서 쏴죽이거나 밀어 강물에 떨어뜨려 죽인 학살 사건 하나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관련 학계에선 근래 들어 아르메니아뿐만 아니라 오스만 붕괴기에 총체적이고도 다양한 집단을 휩쓸었던 [[국가폭력]] 전반을 통틀어 [[후기 오스만 인종 청소]]란 포괄적 개념을 밀어주는 편이다.[[https://www.tandfonline.com/doi/abs/10.1080/14623520801950820?journalCode=cjgr20|#]] 비단 순수한 학술적 영역뿐만 아니라 이 참혹한 역사가 근현대 민족, 국가관 관계에 끼치는 역학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아르메니아-오스만 제국(現 튀르키예) 양자 간 관계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꼈던 알레비파 신자, 그리스인, 아랍인, 폰토스 그리스인, 쿠르드인, 아제르바이잔인, 조지아인 등 수많은 집단간 다각적 관계를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